지난 9일 서울 목동 전세를 알아보던 주부 김 모씨(42)는 확 낮아진 전셋값에 깜짝 놀랐다.
이달 초부터 목동신시가지 소형(전용 53㎡) 평수를 알아봤는데 일주일 만에 1000만~2000만원 내린 매물이 여럿 보였다.
이 아파트 전용 53㎡는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로열동·로열층은 3억5000만원에도 체결됐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달부터는 3억원 이하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공인중개사는 김씨에게 2억6000만원짜리 매물을 소개하며 "코로나19 때문에 집주인이 집을 안 보는 조건으로 싸게 내놨다"면서
"대신 사진을 보내줄 테니 이참에 몇천만 원이라도 아끼는 셈 치고 계약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김씨는 "요즘 전셋값이 비싸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집을 안 보고 계약해도 될지를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서울 전세시장이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전세를 새로 구할 사람들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난리고, 전셋집을 구해야 할 사람들은 집을 보지 못해 난감한 처지다.
집을 볼 수조차 없으니 전세 거래 자체가 끊겼다. 무섭게 오르던 서울 전셋값이 주춤한 모양새다.
서울 전·월세 거래는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된 지난 1월 이후 급속도로 줄고 있다.
10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지난해 12월 1만6891건에서 올해 1월 1만1574건으로 줄더니 2월에는 1만118건을 기록했다.
아직 미반영된 지난달 거래량을 감안하더라도 코로나19 이후 거래 절벽은 뚜렷하게 감지된다.
경기도 분당 백현동에 사는 A씨는 "1월 초에 이사 갈 집을 계약했고 4월까지 잔금을 치러야 한다.
지금 사는 집은 전세를 주고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려고 했는데 세입자를 못 구하고 있다"면서 "집 보겠다던 사람 한 명도 코로나19로 방문을 취소했다"고 했다.
서울 중계동에 사는 B씨는 "로열동·로열층에 집을 다 수리해놔서 전세가 안 나갈지 상상도 못했다"면서 "인터넷 게시판·커뮤니티에 스스로 매물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할 사람들은 이사를 보류하고 있다. 30대 직장인 김 모씨는 최근 집주인과 협의해 전세 계약을 두 달 연장했다.
김씨는 "집주인도 아직 신규 세입자를 못 구했다고 해 두 달만 전세 계약을 연장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이사를 가려 한다"고 했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 직원이 고객에게 집을 보여주다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지며 공인중개업소에서 마스크·비닐장갑은 필수가 됐다.
대규모 아파트 입주장이 들어선 곳들은 물량 폭탄에 코로나19까지 겹쳐 비상이다.
이달 말 3000가구 규모 목동센트럴 아이파크위브 입주가 예정돼 있는 서울 양천구 일대는 지난달부터 전셋값이 하락하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이 아파트 전용 52㎡가 3억원대다. 입주장에 (전셋값 하락은) 어쩔 수 없는데 코로나19까지 겹쳐서 전셋값이 약하다"면서
"전세를 놓으려던 집주인들은 그럴 바엔 들어와서 살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양천구 전세 변동률은 지난해 12월만 하더라도 주간 변동률이 0.45~0.61%였지만 지난달 17일부터는 하락 반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도권 전세시장이 안정화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통상 3~7월이 전세시장 비수기인 데다 코로나19 영향이지,
실수요인 전세 수요가 소화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세가 쌓이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그 수요가 일시에 쏟아져 나오며 전세난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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